Article List :  2008/11 : 3 posted
체험수기  

체험수기

Story 2008/11/28 20:47

다른 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지적장애인분들에게 배운 세상을 보는 법-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상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의 모습은 서로 다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렇게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려 한다. 그러는 가운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불완전함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도를 통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내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분명히 그들과 다른 하늘 아래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이곳 ‘애지람’은 지적장애인 생활시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곳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머릿속으로는 애지람 식구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가슴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그들이 보일 때면, 난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가슴 속으로는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 행동을 바로잡아 보려고 노력해보았지만 달라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들에 대한 회의감만 커져갈 뿐이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텐데, 그들이 얘기해주는 하늘의 모습은 내가 보는 그것과 달랐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조차 거부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작은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영화감상의 날 - 그들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우리는 매월 둘째 주 화요일이면 영화감상을 한다. 작은 일에도 박수를 치며 즐거워 할 수 있는 우리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 대신에 ‘문화의 집’이라는 공공시설에서 조그마한 영화감상실을 빌려서 DVD를 본다.

 여러 달 전에 우리는 지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어느 한국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는 두 명의 지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그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영화의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세상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인데, 직접 그들과 마주하고 있을 때 보이지 않았던 사실들이 영화를 통해서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 명의 주인공은 분명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기쁠 때는 기뻐하고, 슬플 때는 슬퍼하며,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감정이 있는 곳. 단지, 우리가 그들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대우해주지 않는 현실, 그들의 감정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과오, 그리고 그들에게도 꿈, 희망, 그리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은 그들에게는 진심이었고, 그들이 진심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장난인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껏 나는, 애지람 식구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문제를 그저 단순한 고민거리로 여겨왔다. 정상인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만 고집해왔지, 정작 그들의 느낌이 어떤 지는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지적장애인일 뿐이었고, 나 역시 공익근무요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만 하면 되었지, 그들의 느낌이 어떻고, 그들의 꿈이 어떤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 스스로 지적장애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이런 내 생각들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 나도 군대 보내주면 안돼요?

 이곳 애지람에는 무척이나 군대를 가고 싶어 하는 동운(가명)씨가 있다. 멋진 군인이 되기 위해서 매일 운동도 열심히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1분씩이나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동운씨가 어떤 이유로 군인이 되고 싶어 하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단지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는 사실과, 언제 어디서든 군인을 보면 거수경례를 붙이는 모습, 그리고 군인이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진지한 태도를 볼 때, 정말로 군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운씨의 군대에 대한 집착은, 우리가 함께 본 지적장애인 영화를 통해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 영화의 주인공 역시 군대를 가고 싶어 했다. 그는 영장을 받지 못했지만 군대를 가겠다는 일념으로 짐을 챙겨서 군부대 앞으로 무작정 간다. 하지만 ‘빈자리’가 없다는 친절한 설명을 듣고 다시 되돌아온다. 동운씨도 영화를 본 그날 저녁, 영화 속 주인공처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옷 몇 벌을 넣은 배낭 하나를 손에 들고 방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군대에 가게 해달라며 복도를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영화는 곧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날은 이미 저물어 가는데 이대로 정말 군부대까지 걸어가면 큰일이었다. 재활과 선생님께서 동운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나도 군대 보내주면 안돼요?”

“동운아, 아까 영화 봤지? 지금 군대에 빈자리가 없대.”

“자리가 없대요?”

“그래. 지금은 없대. 나중에 빈자리 생기면 그때 가는 거야. 알겠지?”

“군대에 사람이 많아서 못가는 거예요?”

“그래. 그리고 군대 가려면 아침 먹고 가야하는 거야. 저녁에는 군대에 못 들어가니까 일단 방에 들어가서 짐 다시 풀고 있어.”


우리 같은 장애인은 군대 갈 수 없어.

 다음 날 아침에 동운씨가 군대를 가려고 다시 짐을 챙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출근했을 때에는 다들 휴게실에 모여 앉아 TV시청을 하고 있었고, 동운씨는 여전히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과도한 그의 행동을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인영(가명)씨가 동운씨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는 군대 못가!”

“아니야. 나도 갈 수 있다고. 지금 자리가 없어서 못가는 거야. 나중에 자리가 나면 나도 군대 갈 수 있다고.”

 이렇게 동운씨와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던 인영씨는 불현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같은 장애인은 군대 갈 수 없어. 그렇지 준영아?”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인영씨가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처음 들었을 뿐더러, 나와 그들 사이에 있던 보이지 않는 막 - 내가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것이 생겨나 나 홀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읽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르는 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는 스스로의 장애를 자각하고, 그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단지 내게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알려고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이제껏 내가 그들을 대했던 거짓된 몸짓에 부끄러워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려서라도 숨어버리고 싶었다. 나를 바라보는 인영씨의 눈 속에는, 동욱씨에게 진실을 알려 주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애써 인영씨의 눈길을 피해 동운씨를 바라보았다. 동운씨 역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상처받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차라리 군대를 가겠다고 떼를 쓰는 모습일 때가 좋았는데. 동운씨는 그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나는 군대 갈 수 있어.”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한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지만 사실 나는 아직 그들을 잘 모른다. 아마 평생을 그들과 함께 한다고 해도 그들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고 같이 호흡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서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만이 다를 뿐이었다. 그들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했다.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길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지난 일 년 동안의 공익근무생활이 떠올랐다. 부끄럽게도, 지금 내게 남아있는 느낌은,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보다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느낌뿐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진실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했다. 천천히 눈을 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2008/11/28 20:47 2008/11/28 20:47
top